제목 : 최초의 웹브라우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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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3 오후 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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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초의 브라우저는 비올라
드디어 1992년 1월, 텍스트 방식의 브라우저를 anonymous FTP에 의하여 구할 수 있었다. 1992년 7월, CERN은 월드와이드 웹의 라이브러리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이 도구들은 웹의 서버 및 클라이언트 개발자들을 위한 유용한 도구들로 사용되고 있다.
웹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확산되면서, CERN 연구소 이외에서도 웹 브라우저를 개발하는 곳이 나타났다. 가장 최초의 전 화면(full-screen) 브라우저인 비올라(Viola)는 페이 웨이(Pei Wei)가 개발하였는데, 개발 당시 페이 웨이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상당한 심혈을 기울여 개발된 이 브라우저는 여러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버너즈리는 말하기를 웨이가 만일 그 브라우저를 상품화했다면, 모자이크가 차지한 웹브라우저의 명성과 중요한 역할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1991년에 선보인 비올라는 최근에 등장하는 여러 브라우저의 모양과 유사했다.
예를 들면, 하이퍼링크들이 밑줄을 보이거나, 색깔을 다르게 표시한 것 등 이었다. 초기 비올라 버전은 1992년 중반에 구할 수 있었는데, X-윈도우 브라우저는 대체로 마이다스(Midas) 라고 하는 다른 X-윈도우 도구와 함께 1993년 1월에 이르러서야 개발됐다.
비올라의 매킨토시 브라우저는 CERN에서 개발했다. 많은 웹 개발이 전세계 연구진들의 활발한 토론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러한 토론의 대부분은 처음에 'alt.hypertext' 같은 인터네트 뉴스그룹에서 이루어졌고, 후에 'comp.infosystems.www' 뉴스그룹과 'www-talk@info.cern.ch'의 메일링 리스트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1993년 초에 이르러, 월드와이드웹이라 불리우는 인터네트의 검색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유행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인터네트의 고퍼서비스가 훨씬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의 1993년 3월 회의에서, 버너즈리가 이끈 BOF(Birds of a Feather) 세션에는 단지 10명만이 참석했다. 반대로 고퍼 세션에는 그보다 10배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 회의에서 버너즈리는 웹이 주요 정보검색도구로 채택되는데 장애물이 무엇이냐고 청중들에게 질문을 했다. 참석자의 수는 적었지만, 웹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많은 대답들 중 다음과 같은 것들이 나왔다.
● 웹을 처음 설치하는 것이 어렵다. 즉, 서버와 브라우저를 설치할 때, 어느 정도의 어려움과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문서들의 대부분을 HTML로 작성해야 한다.
● 사람들은 설치하기가 용이한 환경, 즉 워크스테이션에서 매우 우수한 기능을 원한다.
● 사람들은 또한 VT-100 같은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텍스트 방식 브라우저를 원한다. 그러나, 텍스트 방식 브라우저는 더미(dummy) 터미널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간단한 풀스크린 기능들조차 이용할 수 없다.
(2)모자이크, 첼로, 링스
버너즈리는 위의 첫번째 항목을 잘 받아들여 설치 또는 구현을 간편하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3년 7월부터 1994년 7월까지 일년동안, 아리 루오토넨(Ari Luotonen)이라는 사람은 CERN httpd 서버에 대해 많은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서버를 개발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다른 개발자들은 브라우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1993년 2월에 마크 앤더슨(Marc Andreessen)은 X-윈도우용 모자이크를 발표했다. 그때, 그는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의 본부가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어바나-샴페인 대학의 학생이었다. 앤더슨은 모자이크를 처음 고안하여, NCSA의 프로그래머인 에릭 비나(Eric Bina)와 함께 개발했다.
모자이크가 등장하자 웹은 인터네트를 사용하는 수천만의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설치하기가 쉽고 HTTP와 HTML을 다룰 뿐만 아니라, 고퍼나 FTP와 같은 다른 프로토콜들도 다루었다. 매우 기능이 우수하였고, 개발과정에서 오류가 신속히 수정되어 완성품이 곧 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물론 모티프와 X-윈도우가 실행될 수 있는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1993년 중반에 NCSA는 그 모자이크 브라우저의 매킨토시 버전과 윈도우즈 버전을 발표했다. 1993년 가을, 크리스 윌슨(Chris Wilson)이 개발한 윈도우즈 모자이크가 발표되었고, 또한 토마스 레드맨, 김 스텝슨, 마이크 맥쿨이 개발한 매킨토시용 모자이크도 탄생했다.
1993년에 개발된 브라우저는 모자이크만이 아니었다. 코넬 법과 대학의 브루스 (Thomas R. Bruce)는 자신이 개발한 윈도우즈용 브라우저인, 첼로(Cello)를 그해 초에 발표했다. 브루스는 자기가 처음 웹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크롤 (Ed Krol)의 'The Whole Internet User's Guide and Catalog'라는 책과 고퍼 뉴스그룹을 통해서 였다고 한다. 그는 CERN의 텍스트 브라우저와 비올라 브라우저를 보았을 때, 웹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고, 그래픽 브라우저의 중요한 역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됐다. 브루스는 상당히 많은 하이퍼텍스트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사용자들의 데스크탑에 웹을 가져다 주려고 매우 노력했다. 첼로는 많은 윈도우즈 사용자들에게 인기있는 브라우저로 알려지게 되었고 계속하여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다.
한편, 1993년 IETF 회의에서 필요하다고 지적된 VT-100용 브라우저도 미국 캔사스 대학의 몬툴리(Lou Montulli)에 의하여 1992년 초에 개발됐다. 이것은 대학 정보 시스템의 일환으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표적인 텍스트 브라우저인 링스(Lynx)다. 이 개발에 참여한 사람중 중요한 사람들은 찰스 레자크(Charles Rezac)와 마이클 그로브(Michael Grobe)이다.
http는 하이퍼텍스트 트랜스퍼 프로토콜(HyperText Transfer Protocol)의 이니셜을 딴 약어로 1990년 이래로 인터넷 월드와이드 웹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와 숫자, 기호, 그림을 포함한 정보의 전달방법이다. CERN 개발팀의 일원으로 현재까지 개발업무에 주력하고 있는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 라는 사람에 의해 1989년 설계되었고 인터넷 기반에서 하이퍼미디어의 광역적인 정보 공유를 위한 프로토콜로 개발됐다.
이 프로토콜은 데이터가 분산돼 있으면서 빠른 전달 속도를 요구하는 시스템에 적합한 하이퍼 텍스트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돼 현재 인터넷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월드와이드웹에서 사용되게 됐다. 모든 정보제공방식이 순차적인 나열식이 아니라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하이퍼텍스트 구조로 제작돼 있고 서버하나에서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망 전체에 정보를 담고 있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게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개념을 기반으로 한 하이퍼텍스트 트랜스퍼 프로토콜의 등장은 인터넷의 대중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이전의 인터넷이 텍스트기반에서 정보를 공유하던 것에서 그림과 텍스트가 함께 포함된 각종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걸음 발전시킨 것이다.
월드 와이드웹 서비스를 사용하다보면 사용자가 접속한 서버에 적합한 정보가 없는 경우라도 다른 서버에서 정보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하이퍼텍스트 트랜스퍼 프로토콜이 서버와 독립적인 데이터를 전송하기 알맞게 설계된 프로토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 하이퍼텍스트 트랜스퍼 프로토콜은 1994년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데이터와의 호환이 가능하게 구조화됐다.